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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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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두 가지 이유
등록일 2016.03.09 조회수 6426

 

서울사이버대 김용희 교수 사진 
<서울사이버대 김용희 교수 / 부동산학과>

 

 

 

늘 인자하고 부드럽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불같이 화를 냈다. 이유인 즉 멕시코 순방길에 대중 속에서 누군가 자신의 옷자락을 당기면서 본인 앞에 있던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이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의 이기적 욕망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강하게 말한다,

나이키가 전 세계복싱 챔피언이며 필리핀 상원의원에 출마중인 매니 파퀴아오(Pacquiao)의 후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것은 “동물이 동성끼리 짝짓기하는 것을 본적이 있느냐, 동애자들은 동물만도 못하다”는 파퀴아오의 발언 때문이었다, 타이거 우즈의 비상식적 불륜행각에도 침묵하던 나이키가 이 전직 복서에 대해서는 "어떤 차별화도 동의하지 않는다"고 후원 중단의 이유를 밝혔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위한다는 거창한(?) 명분도 아니다, 명분은 또 다른 명분과 대치점을 갖는 단다(노자),

  

인간이란 무엇일까? 그건 참으로 막연한 질문이다, 그러나 인류탄생이래 한 번도 놓지 않은 질문이기도 하다, 인간을 단정적으로 정의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상의 두 가지 사건과’관련해서 철학사적으로 주목할 만한 시도가 있었는 것 같다, 소위 '실존주의'라고 이름 지어진 이들의 인간에 대한 설명이다.

  

"인간은 이유도 근거도 없이 세상에 내 던져진 존재"(하이데거Heidegger)다, 자기의 뜻대로 이 세상에 온 것도 아니요 자신의 뜻대로 늙어가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본질적 허무는 어쩌면 숙명이다. 그리고 또 인간이 공허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간은 일정하게 규정될 수 있거나 틀 지워질 수 없는 ‘모호한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인간에 은 ‘이성적 동물’, ‘관계적 존재’, ‘정치적 동물’이다” 등의 정의는 인간의 본질에 관한 온전히 설명이 되지 못한단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에 따르면 인간은 '그것 자체가 있음'인, 즉 '즉자존재'(卽自存在 Ansichsein, Being-in-itself)인 다른 동.식물과는 달리, 대상에 대해서 반응함으로서 존재하는 '대자존재'(對自存在 Fursichsein, Being-for-itself)란다, 즉 인간은 '자아'라고 할 만한 실체나 본질이 없고 대상(인간,사물,신,,,)을 투영하고 반응함으로서 존재하는 존재란다. 실체 혹은 자아가 없다는 것은 불교식으로 말하면 '제법무아(諸法無我)'이다. 따라서 인간은 이런 태생적 본질적 공허를 채우려고 '구원에의 욕망'에 매달리거나 '권력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즉 교황의 옷자락이라도 잡고자하고, 총선에서 승리하여 강력한 권력을 쥐고자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서 본질적 공허가 충족될까? 사르트르는 대자존재인 인간은 그 본질적 공허는 채울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비어 있음(공허)’은 그것을 무엇으로 채워도 채운 것이 그것 자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란다, 즉 그릇에 밥을 담아도 밥은 그릇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는 '바람끼'의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 존재가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주·객관적 혼용, 혹은 대자존재....등 ‘그 무엇'이라 해도, 그리고 인간의 욕망 또한 시지프스(Sisyphe) 신화처럼 끝없이 갈증 할 수 밖에 없는 빈 그릇이라 해도 분명한 건 있다, 우리가 교황의 행동이나 나이키의 처분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는 것. 즉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이런 부분을 부각시키는 ’묵시적 사회적 동의‘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어떤 차별화‘도, ’이기적 지배욕‘도 거부하는 조직이나 개인에 주목하는 것, 그것 자체가 이시대가 그래도 희망적이라는 것이며 ‘인간이 인간 일 수 있는 이유’가 되는 것이 아닐까, 또한 그것은 현재가 꽤나 ‘긴장되고 답답한 상황이라는 반증’이며, 나아가 ‘희망하고픈 인간 본성에 대한 가련한 기대’이고 싶다.  

 


부동산학과 김용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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