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SCU칼럼] 이정원 교수 - 내 마음의 음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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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0.03.03 | 조회수 | 3430 |
군경상담학과 이정원 교수
내 마음의 음악
몇 해 전 이사를 했다.
처음 클래식을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바이올리니스트 야사 하이페츠(Jascha Heifetz)의 음반을 사오셨고 낡은 전축 위에서 흘러나오던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들은 소녀의 가슴을 쿵쿵 두드리면서 다가왔다. 그 뒤로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그 곡들을 들을 때마다 그 시절이 생각나곤 했는데 특히 2010년 초 힐러리 한(Hilary Hahn)의 내한 공연에서 정확하고 화려한 테크닉으로 들려주는 바이올린 선율과 마주쳤을 때는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찌릿하기까지 했다. 왜 아팠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짐작건대 뭔가 힘들어하고 있었던 듯하다. 내 자신도 인지하지 못했던 감정이 음악의 자극으로 스멀스멀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음악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표현하도록 해 준다.
음악, 즉 뮤직이란 말은 뮤지케(Musike)라는 어원에서 나왔다. 이는 아폴론을 섬기는 9명의 여신인 뮤즈의 영감을 받아 이루어지는 활동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의 음악은,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의 중요한 경기 중 하나로, 키타라라는 악기를 치면서 자작 연주의 형태로 기예를 겨루었다고 한다. 또 이 시기에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극음악이 발달하였는데 시와 음악, 무용이 결합된 종합 예술인 합창으로 표현되는 코러스는 극의 진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이 극음악은 우리나라의 판소리와도 유사하여 동서양의 음악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공통되는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악의 역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몇 가지 학설에 의하면 동물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려고 하다 보니 소리에 높고 낮음이 생겼다든지, 원시인끼리 주고받는 말에 점점 억양이 생기고 높고 낮음이 뚜렷해지면서 나타난 것이 음악이라든지, 자신의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다 보니 저절로 가락을 띠게 된 것이라는 등 기원이 다양함을 알 수 있다. 성경에는 이미 신이 인간에게 음악을 선물로 주셨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음악을 통해 고대사회를 비롯한 과거와 대면하고 그 시대상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음악은 사회와 문화의 연속성에 기여한다.
봄이면 사방에서 들리는 비발디의 <사계> 중 ‘봄’으로 시작해서 ‘여름’에는 깊은 강처럼 감미롭게 일렁대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젊은 여인의 가벼운 발걸음을 연상시키는 명쾌한 플루트의 소리에 머리를 까딱거리기도 하고 두루뭉술하게 퍼지는 호른의 협주곡 소리에 잠시 머무르기도 하다가, ‘가을’에는 가을의 정취를 정말 잘 느끼게 해주는 로드 맥퀸(Rod McKuen)의 푸근한 목소리에 취하다 보면 ‘겨울’이다. 이맘때는 <호두까기 인형>의 ‘꽃의 왈츠’를 들으면서 한 해를 마감한다. 이만하면 과히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삶이라 자족하며 감사함을 느낀다. 아름다운 이 계절에 모두가 잠시 시간을 내어 마음 속 저장소에 쌓여있는 자신만의 음악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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