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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듬는 사회’, 새로운 공동체 가치로 끌어올려야
등록일 2016.02.22 조회수 7949

보듬는 사회 새로운 공통체 가치로 끌어올려야 


 

보듬는 사회’, 새로운 공동체 가치로 끌어올려야 여성신문은 2016년 어젠다로 ‘보듬는 사회로’를 설정했다. 우리 사회의 극심한 갈등을 끌어안고 통합과 관용, 나눔과 상생을 이루는데 여성이 촉매제 역할을 하자는 의미다. 여성신문은 ‘2016 어젠다’에 대한 평가를 듣고, ‘갈등 사회’의 해법을 묻기 위해 지난달 29일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과 정영애 서울사이버대 부총장을 초청해 대담을 가졌다. 대담은 서울 종로구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회의실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우리 사회의 위기 어디서 왔나 -‘보듬다’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나 동물을 가슴에 붙도록 안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가슴으로 꼭 껴안고 체온을 나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상대의 마음을 깊숙이 공감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갈등 공화국’이라 부를 만큼 갈등이 일상화돼 있다. 사회 양극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대로는 한국 사회가 미래를 대비할 수 없지만 기존의 사회 구성 원리로는 ‘갈등 사회’를 해결할 수 없다. 물질적 가치관이나 성장론으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이하 송)=유엔 새천년개발목표 만료에 따라 2016년부터 2030년까지 국제사회의 새로운 개발협력 지침이 된 ‘2030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전문을 보면 ‘포용’이란 단어가 수차례 반복된다. 여성신문의 올해 어젠다와 비슷한 생각을 세계 각 국 정상들이 한 것 같다(웃음). ‘보듬는 사회로’라는 어젠다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비춰 봐도 시의적절하다. 정영애 서울사이버대 부총장(이하 정)=우리나라가 경제 선진국 대열에는 진입했지만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고 사회적 대립과 갈등도 여전하다. 다양한 현안이 해결되기보다 갈등이 증폭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보듬는 사회로’라는 어젠다는 새로운 사회 공동체의 가치로 충분히 제시할 만하다. 그동안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과 배려 수준에서 머물렀는데 이 수준을 넘어 경쟁보다 상생을 지향하고 서로를 보듬고 포용하는 사회로 가야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다. 이 어젠다에는 여성주의적 가치가 담겨 있다. 이를 사회 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가치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보나. 송=원인은 두 가지다. 압축 성장에서 온 부작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또 하나는 학교와 가정의 붕괴다. 공동체의 일원이 가져야 할 가치를 배우지 못한 탓이 크다. 국제사회에서 대립이 증폭된 것은 동서 냉전 체제가 무너진 후 디지털 사회로 빠르게 이행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절충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위기가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갈등을 해결할 역량이나 메커니즘은 아날로그 시대에 있다. 그런데 위기나 갈등은 디지털 수준이니 파열음이 클 수밖에 없다. 정=요즘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을 많이 이야기한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지면서 열심히 노력하면 이뤄진다는 희망이 점차 사라져간 것 같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을 지옥에 빗댄 ‘헬조선’이란 신조어가 유행한 것은 우리 사회의 부정적 면모를 극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경쟁이 가열된 가운데 공정성이나 기회에 대한 믿음이 낮아지면서 위기가 발생했다고 본다. ▲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 정영애 서울사이버대 부총장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다문화, 새터민 보듬는 사회로 -특히 사회가 안정되지 못했을 때 여성이 남성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다. 정=물론이다. 사회 불안이 심화되면 여성들이 갖는 불안이나 고통은 훨씬 더 크게 나타난다. 예컨대 민주적인 정부들이 들어서면서 여성 이슈가 확대되고 법제도와 여성 정책이 많이 마련됐는데 사회 전반적으로 보수화되면 결과적으로 그런 이슈들이 다 사라지거나 백래시(Backlash·반발현상)에 부딪히게 됐다. 젠더 어젠다는 독자적으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사회적 상황과 연관돼 있다. 어떻게 보면 다른 형태의 진보적인 운동과 함께 가지 않고 독자적인 여성 이슈로만 존재 할 수 없다. 송=이는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전쟁터나 분쟁 지역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이 여성과 어린이다. 여성을 강간해 성노예로 만들고, 소년병을 징집해 내전에 투입한다. 분쟁 자체도 참혹한 현실이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고통은 더욱 크다. 지구촌에는 1000만명이 넘는 난민이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살고 있는데 그중 절반가량이 어린이다. 시리아의 잔혹한 무력 분쟁을 피해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는 어린이도 200만 명을 헤아린다. -우리 사회에서 특별히 관심을 갖고 보듬어야 할 대상은 누구라고 보나. 송=미래 세대인 어린이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 나라의 운명이 어린이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상황에선 다문화 가정과 새터민에게 더 큰 관심을 쏟아야 한다. 다른 나라에는 없지만 한국에만 있는 그룹이기 때문이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정책 지원과 함께 우리 사회의 시선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 여전히 사회적 냉대를 겪는 이들이 많다. 정=저출산이 심화되고 생산연령인구가 부양해야 할 인구에 비해 급격하게 축소되면서 2026년이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다문화 가정과 새터민들이 우리 사회의 일부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실 농촌 지역에선 이미 주 거주민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배타성은 여전한 것 같다. 다인종 국가에 비해 우리는 한민족으로 오랫동안 이어져왔기 때문에 포용력이 다소 떨어지는 듯 하다. 다문화 가정과 새터민도 우리나라의 미래를 같이 책임진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아직 손님으로 여길뿐더러 심지어 이주 노동자는 쓰고 버린다는 의식을 가진 이들 탓에 한국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돌봄과 배려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새터민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이념적으로 복잡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통일을 향해 갈 때 앞서서 중요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 그런데 새터민 정착 과정이나 그 이후가 생각보다 잘 이뤄지지 못해 부정적인 결과도 오는 것 같아 걱정이다. 송=금세 효과가 나는 속시원한 단기적 해법은 없을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교육을 통한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 학교 교육과 사회 교육에서 의식을 바꾸는 노력이 절실하다. 외국 초등학교 교과서를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1학년 교과서부터 엄마, 아빠와 함께 계모(step mother), 계부(step father)가 나온다. 이혼율이 높고 사별 후 재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회 현상이다. 그 다음에 자식들이 쭉 나오는데 자기가 낳은 아이들, 입양한 아이들, 얼굴이 까맣고 머리가 뽀글뽀글한 아이들, 얼굴색이 하얗거나 노란 아이들이 한 명씩 다 있다. 이게 가족이라고 돼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백의민족, 단일민족이라며 배타성을 조장한다. 교과서를 바꿔서 열린 교육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족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 교과서를 만들어 학교 교육을 해야 한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어린이 인권은 한 사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가족의 주요 구성원인 엄마의 의식 변화를 강조하고 싶다. 부모가 자식을 소유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대여섯 살부터 학원에 보내면서 아이를 채찍질해 경쟁사회로 집어넣는 것도 엄마들 아닌가. 심지어 대출을 받아서 그렇게 하니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서양사회에선 혼주가 신랑과 신부인데 반해 한국은 자식 결혼의 혼주가 부모다. 가족 안에서 자식에게 맹목적 사랑을 쏟아붓다보니 자기계발과 사회 참여의 기회를 손해 보는 것 아닌가. 여성주의, 갈등의 해법 될 것 정=성평등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다. 북유럽은 전업주부가 4∼5%가량 밖에 되지 않는다더라. 반면 우리나라는 고학력 여성 가운데 전업주부가 많으니 자녀만 바라보고 자녀에게 더 투자하게 된다. 아이의 성공을 통해 가족이 발전하는 식의 투자 전략이 돼버린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자신이 배운 자산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일·가정 양립을 확실히 지원하는 제도가 자리잡아야 여성의 사회진출이 원활해진다. -‘포스트 2015’ 글로벌 개발의제인 유엔 SDGs 이야기로 넘어가고자 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전 세계가 함께 노력하는 개발의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SDGs 17대 목표 중 제1목표는 MDGs와 마찬가지로 ‘빈곤 퇴치’다. ‘극빈층 제로, 기아 제로’를 목표로 삼았다. 송=유니세프에 20여 년을 관여했는데 초기부터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도 못 살고 어려운데 왜 국제사회 어린이들을 돕느냐’는 직설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6·25 전쟁이 터져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촛불을 켜고 거적때기 천막 속에서 공부를 하는데 공책이 누렇고 시커먼 재질에 구멍이 뻥뻥 뚫린 종이더라. 연필을 받아서 썼는데 가운데 이상한 돌 같은 게 박혀서 뚝뚝 부러지고 종이 위에 잘 써지지가 않았다. 종이에 글씨를 쓰고 지우개를 지우면 온통 시커메지고 찢어졌는데 어느 날 새하얀 도화지와 연필이 들어와서 사용해보니까 부드럽게 잘 써지고 지우개도 깨끗이 지워졌다. 유니세프가 전 세계로부터 구호물자를 구해서 부산 항구에 내려서 전달한 거다. 그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가톨릭 교리 문답을 다 외우고 유니세프에서 보내온 강냉이 죽을 먹은 기억도 선명하다. 우리나라가 원조를 받던 수혜국이었다면 경제 여건이 좋아진 지금은 당연히 국제사회에 이를 갚아야 하지 않겠나. -이제부터라도 다양성을 인정하고 소수자를 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성주의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의 해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정=물론이다. 여성주의에 기반해 생명 존중 정신과 평화, 공동체 담론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하지만 생물학적 여성만 여성적 가치를 갖는 것이 아니다. 남녀 누구나 여성적 가치를 지향할 수 있다. 보듬는 사회 공동체가 되려면 이런 여성주의적 가치를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 송상현 / 전 국제형사재판소장 서울대법대 교수로 35년간 후학을 양성했다. 한국법학교수회장, 국제거래법학회장 등을 역임했고 미국 하버드대·컬럼비아대 교수, 뉴욕대 석좌교수 등 폭넓은 해외 경험을 쌓았다. 정영애 / 서울사이버대 부총장·사회복지학과 교수 이화여대에서 사회학(학사, 석사)과 여성학(박사)을 전공했다. 한국여성학회 회장, 대통령 비서실 균형인사비서관, 인사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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