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공장형 교실의 해체: AI시대 인간 중심 교육의 재설계 - AI크리에이터학과 김환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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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5.09.05 | 조회수 | 261 |
![]() AI크리에이터학과
김환 교수
교육의 근본적 전환이 시작됐다. 인공지능은 기존 학교 시스템을 조금 더 효율화하는 보조 도구가 아니라, 산업화
시대에 설계된 ‘공장형 교실’ 자체를 해체하고 새로운 규범과 목적을 요구하는 촉매로 등장했다. AI의
궁극적 영향은 기존 학교의 개선이 아니라 개념적 폐기와 재구성에 있다. 교육 현장은 이미 AI 도입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단계에 진입했다.
변화의 속도는 놀랍다. 미국 초중등
교사의 상당수가 AI를 수업에 활용하기 시작했고, 고등교육에서는
학생과 교수진 모두 생성형 AI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불과 1년 사이 대학 교수들의 AI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교실의 즉각적 변화와 정책·윤리·거버넌스의 지연 사이에는 뚜렷한 격차가 존재한다. 공식 가이드라인이 현장 도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교사 주도의 ‘그림자 교수설계’가 확산되고 있다. 이는 제도적 틀 밖에서 교사들이 독자적으로 AI 도구를 실험하고
적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AI가
만들어내는 첫 번째 해체는 커리큘럼이다. 정해진 교육과정을 모든 학생에게 일괄 적용하는 방식은 ‘유동
커리큘럼’으로 대체되고 있다. 자연어처리와 지식그래프가 학습자의 수행을 분석한다. 강화학습과 예측분석은 인지·정서 상태를 파악한다. 이를 통해 개인별
선지식과 목표를 실시간으로 반영한다. 교육과정은 하나의 고정 경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재조합되는 ‘생성적
경로’가 됐다. 교사의 주요 역할도 콘텐츠 저자에서 품질관리자·윤리감독자로 이동했다. AI가 생성한 자료의 정확도·편향·교육적 타당성을 검증하고, 학습자
보호를 위한 윤리적 가드레일을 세우는 일이 핵심 책무가 됐다.
두 번째 해체는 캠퍼스의 경계다. 메타버스형
몰입 환경은 물리 공간의 독점을 깨뜨린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전통적 강의가 주로 의미기억에 의존하는
반면, VR 학습은 시각·청각·운동·해마·전전두엽을 동시에 활성화해 맥락이 풍부한 일화기억을 강화한다. 물리적 학교는 공동체와 프로젝트 거점으로, 깊은 개념 학습은 인지적
최적화가 가능한 가상 공간으로 분화될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 해체는 학위다. 정태적
졸업장 중심의 신뢰 체계는 포트폴리오 기반의 동적 역량 증명으로 이행 중이다. AI 평가가 비정형 산출물을
대규모로 분석하고, 블록체인과 검증 가능한 자격 표준이 위변조 방지와 상호운용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유동 자격(liquid credential)’은 소유권이
학습자에게 있고, 미시 역량 단위로 축적·조합·갱신되는 학습 원장 모델로서 대학의 자격 독점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해체와 함께 인간 주체의 진화도 진행된다. 감정컴퓨팅의
성숙은 AI 튜터를 ‘인지 발판’에서 ‘정서 지능형 동반자’로 확장한다. 웹캠·음성·입력 패턴·생체신호 등 멀티 모달 데이터를 통해 학습자의 혼란·좌절·몰입 상태를 추정하고, 감지된 정서에 따라 설명 방식 전환, 인지부하 관리, 동기 개입, 공감적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제공된다. 동시에 프라이버시 침해, 정서 조작, 의존성, ‘가짜 공감’의 윤리 문제가 제기된다. 감정 데이터는 가장 민감한 교육 데이터이며, 설계·거버넌스 실패
시 학생 권리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다.
교사의 역할은 ‘무대 위 현자’에서 ‘메타인지·윤리 코치’로 재정의된다. 교사는 실시간 학습분석 대시보드를 해석해 맞춤 개입을 설계하고, 학생의
자기조절학습 능력을 기르며, AI 산출물 비판, 데이터 프라이버시, 알고리즘 편향과 사회적 영향 등 윤리적 추론을 가르쳐야 한다.
지식의 의미도 ‘소비’에서 ‘공동 창조’로 전환된다. AI는 문헌 종합, 가설 생성, 실험
설계 최적화, 멀티모달 데이터 해석, 이론 통합을 수행하며, 인간은 맥락·직관·창의·윤리 감각으로 보완한다. 이러한 ‘협업 지능’은
대학원의 연구 훈련 역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가설 검증, 통합
역량, 윤리 감독, 메타리서치로 재구성되도록 요구한다.
과도한 생성형 AI 의존은 ‘인지
외주화’를 초래해 비판적 사고의 위축과 기억·추론 능력 약화를 부를 수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편향·공정성·프라이버시·데이터
주권과 디지털 격차가 학습 결과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교육이 ‘인지 패권’ 경쟁의
전장으로 전환되며, 기술국가주의와 인간 중심 교육 비전이 충돌한다.
해법은 인간 중심 전환의 시스템 설계에 있다.
첫째, 유네스코(UNESCO) 등 국제 원칙을
채택하고 투명성·공정성·책임성·인간 감독·자율성 존중을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메타인지, 관계적 지능, 재정의된
창의성, AI 리터러시를 통합한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셋째, 교사를 위한 대규모 전문성 개발이 시급하다. AI 기초, 학습분석 해석, 윤리, 메타인지
코칭, 정서 지능 모듈로 구성된 체계적 연수가 필요하다. 넷째, ‘인간 중심’ 거버넌스를 정착시켜야 한다. 알고리즘 감사, 데이터 거버넌스 보드, 윤리 검토,
학습자 권리 프레임워크, 국제 공조가 필수다.
우리가 맞닥뜨린 것은 기술 선택이 아니라 교육이 추구할 인간상에 대한 선택이다. 하향식 규제와 상향식 혁신의 간극을 메우지 못하면, 효율을 얻는
대신 인간성의 점진적 침식을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반대로 인간의 지혜·공감·창의·윤리 판단을 중심에
두고 도구를 재설계한다면,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을 확장하는 파트너가 된다.
한국 교육에 대한 구체적 제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 차원의 AI 윤리 프레임워크 채택과
교육부·시도교육청의 투명성 규정 의무화가 필요하다. 둘째, 교원
연수 체계를 ‘데이터 리터러시+메타인지 코칭+윤리’ 3축으로 재편해야 한다. 셋째, 공공 LMS에 학습자 주권형 포트폴리오와 유동 자격 시범사업을 도입하고 블록체인 기반 검증 연계를 준비해야 한다. 넷째, 시도별 메타버스 교실을 ‘공동체 프로젝트 허브’로 배치해
물리·가상 공간의 역할을 분담해야 한다. 다섯째, 모든 학교에
학습자 권리장전을 제정해야 한다. 데이터 최소수집, 목적
외 사용 금지, AI 개입 고지, 인간 심사 청구권을 명시해야
한다.
‘교육의 특이점’은 기계가 우리보다 더 똑똑해지는 순간이 아니라, 우리가 그 기계를 통해 더 현명해지기로 선택하는 순간이다. 공장형
교실의 해체 이후, 인간 중심으로 재구성된 교육을 향한 최소한의 사회적 계약이 지금 필요하다.
투데이신문 2025.08.22
AI크리에이터학과 김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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